영화 차인표
어느 날 갑자기, ‘차인표가 차인표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웃기는 병맛 영화래~’라는 단 두 마디의 해맑게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거실 홈시어터에 그의 영화가 걸렸다. 예의 그 ‘두둥~’하는 효과음과 초대형 빨강 ‘N’자가 등장하며 말이다. 엇! 자... 잠깐만...
솔직히 나는 차인표라는 배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마지막으로 하루아침에 대스타가 된 남자, 그런 그를 만들어준 전설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조차’ 나는 안 봤다. 당연히 그 이후 작품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삶이란 게 그렇다. 가끔은 그냥 영화를 봐야 할 때도 있다. 이왕 이리된 거, 그냥 열심히 보자... 어라? 한데... 제법 볼만하다?
시놉시스
영화 차인표는 2021년 1월 2일, 신년 벽두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독점 공개된 우리나라 영화다. 영어 제목은 ‘What Happened to Mr. Cha’, 즉 ‘차 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정도 되겠다. 원래는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으로 2020년 초에 극장 개봉을 추진했던 영화지만, 온 세상을 바꿔버린 대유행으로 인해 극장 개봉은 취소되었단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영화 차인표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화려한 날들은 갔다.
그것도 제법 오래전에.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사는 배우 차인표.
그의 세상이 느닷없이 무너진다.
드디어 정신을 차릴 순간이 왔단 말인가.
각본과 감독은 김동규, 주요 인물로는 당연직 주연에 차인표, 그리고 조달환과 송재룡이 출연한다. 인물 라인업에서 소위 말하는 ‘티켓 파워’라는 것은 좀 부족하지 싶다.
가만 보니 영화 장르가 다크 코미디다. 보는 순간 느꼈다. 이 영화, 아마 평이 별로일 가능성이 크겠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나 평론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크 코미디를 그리 좋아하질 않는다. 봉준호와 송강호가 아니라면 말이다.
스포 최소 리뷰
왕년의 대스타 차인표, 이제는 어르신들이나 아는 ‘최고’가 아닌 ‘최고였지’ 배우가 됐다. 한데, 문제는 그의 현실인식, 투자 부적격 배우로 영화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후배 강도철(지승현)을 영화에 꽂아주겠다며 오지랖을 떤다. 그런 형님이 안쓰러워 하얀 거짓말로 속이고 있는 매니저 김아람(조달환), 철없는 연예인 형님은 그런 매니저를 쪼아댄다.
어느 날 광고주에게서 받은 운동복을 입고, 별님이(반려견)를 대리고 등산을 간다. 우연히 동네 오지랖 아줌마 둘(신신애 등)을 만나 팬 샷까지 반강제 헌납하는데, 그 와중에 아줌마 양산에 밀려 별님이 똥을 손으로 잡는 불상사가... 등산 접고 집으로 가려는데, 어라? 개가 없어졌다.
한참을 찾아 헤매는 차인표, 우연히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조상구)가 개를 데리고 있다. 같은 옷의 두 사람 사이에는 제법 큰 진흙 구덩이가 있고, 굳이 위험하다는데도 잘난 척 점프하는 차인표, 허무하게 미끄러져 온통 진흙투성이가 된다.
차인표를 알아보는 수상한 남자, 등산로 입구에 여학교 체육관이 항상 문을 열어놓으니 거기 가서 샤워를 하란다. 여학교 체육관의 샤워장, 한참을 고민하는 차인표, 한데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 ‘빨리 와 빨리... 아, 차인표라니까’, 아까 그 오지랖 아줌마가 아줌마 부대를 이끌고 몰려온다. 냉큼 개구멍으로 진입, 그는 결국 여학교 샤워장에서 샤워를 시작한다. 당연히 다 벗고.
문제는 그 체육관이 부실공사에 낡을 대로 낡은 상태였다는 것. 샤워 도중 체육관이 무너져버렸다. 샤워 중이던 차인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알몸인 채 구조물에 끼어 꼼짝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119? 그럼 구조대? 여학교 체육관에서 알몸인 채 구조? 결국 구조 요청은 포기하고 매니저를 부른다. 와서 꺼내달라고.
이후 영화는 애타는 차인표의 매니저 김아람,
학교 운동장에서 먼지 펄펄 날리며 드리프트를 치는 교장(박영규),
의도치 않았지만 차인표 구조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학교 관리인 김주사(송재룡),
배관 수리하러 왔다가 건물 붕괴의 책임을 떠안은 수리기사(김한종),
철거용 굴착기 기사(윤대열) 등의 인물들이 얽히며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거기다 갑자기 나타난 연극부원 정은(최정은), 친구 수정(가을)이 체육관에 출몰하던 변태를 잡겠다며, 샤워장에 달 CCTV를 사러 나간 후 사라졌단다. 한데 변태라고 찍힌 사진을 보니, 어라? 차인표와 같은 체육복이다?
10년 이미지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며, 자신의 이미지가 대단한 성이라도 되는 양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차인표, 도저히 알몸으로 구조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버티자니 철거 기계에 깔리거나 굶어 죽을 상황. 대체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슬램덩크의 강백호도 아닌데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차인표, 나름 무한 긍정으로 무장한 그의 알몸 탈출 투쟁기가 펼쳐진다.
매트릭스 병맛
영화는 묘하게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놓았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남자이자, 여주인공 신애라의 남편,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대스타 차인표. 너무 솔직해 씁쓸하기까지 한 현실이 그대로 영화에 깔린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 묘하게도 꼬아 놨다.
영화 도입부, 역할 투정을 하며 영화를 거절하는 차인표, 실재로도 그는 이 영화를 거절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신애라도 ‘그걸 뭐하러 하냐’고 반대했었다고. 한데 이제는 ‘그냥 뭐라도 해’로 바뀌었단다. 영화 차인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독 장항준이 감독 역으로 나와 차인표 부활을 위해 먼저 죽여주겠단다. 세상 포기한 난닝구 반바지와 덥수룩한 수염, 빼꼼한 눈으로 ‘나를... 어떻게 살려준 건데?’라며 영화에 흥미를 보이는 차인표, 그는 영화 차인표의 주연 차인표 역에 차인표가 됐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가상인가?
그 외에도 영화 차인표는 여러 인물들이 실재 이름으로 여기저기 나온다. 배우 류승룡 역에는 류승룡이, 권오중은 장어 홈쇼핑에서, 신애라는 신애라 목소리로, 최민식은 최민식 사진으로 등등. 마치 대체 역사물이나 페이크 다큐 같은 느낌이다.
아, 그리고 수상한 등산객 역으로 나온 조상구, 대개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 만화가 이현세의 친구란다. 이현세의 영원한 주인공 까치의 실제 모델인 친구였다고. 영화 외인구단에서 까치 역이 아닌 조상구 역으로 데뷔했고, 그 역할 이름을 예명으로 쓰고 있단다. 뒤에 1987년 지옥의 링에서 드디어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지만, 영화는 망했다.
그러고 보니 차인표도 영화 복이 드럽게 없다고 하더라. 선택한 영화는 망하고, 거절한 영화는 대박 나기로 유명하다고. 오죽하면 ‘목포는 항구다’라는 영화가 관객수 백만을 간신히 넘겼는데, 차인표 영화에서 처음으로 수익을 남겼다는 보도가 나왔었다고. 이 영화 차인표는 어떨지...
그래서 평점은?
일단 영화는 밀도도 있고, 캐릭터들도 잘 맞아 돌아가는 편이고, 가상과 현실의 묘한 얽힘과 꼬임도 괜찮다. 다만 역시나 문제는 블랙 코미디, 또는 다크 코미디라는 점. 내 평점은 3점 주련다. 추천 등급이나, 호불호가 갈릴 영화라는 의미다.
일단 영화 차인표를 홈시어터에 건 그 사람은 보는 내내 웃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와 같을 수는 없다. 봉준호 외의 블랙 코미디를 즐겁게 봤던 기억이 두어 편 이상 된다면, 제법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봉송 커플의 영화 외에는 아예 재밌었던 작품이 떠오르질 않는다면, 또는 영화 기생충이 뭐 그리 대단한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면, 심지어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면, 그렇다면 영화 차인표는 당신에게 안 맞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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