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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와 레시피/리뷰

베니하루카 고구마 후기 - 고구마 변신기

by star dust 2020. 12. 25.

고구마

 

이 글은 내게 있어 고구마의 이미지 세탁에 관한 기록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고구마 몇 가마와 라면만으로 그해 겨울을 때웠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별로 특별한 요리법이란 것이 없어서, 그저 굽거나 찌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었다. 결국 밥상 위에는 라면, 군고구마, 라면, 찐고구마, 다시 라면... 정말 내게는 눈물, 아니 신물 없이는 회상하기 어려운 웃픈 기억이다.

고구마 추억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그 이후로 나는 고구마를 별로... 한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 없는 집에서 라면 맘 놓고 먹겠다고 놀러 왔던 코흘리개 친구들, 걔들도 고구마를 보고는 낯빛이 싸~악 변했었다. 그렇게 그해 겨울, 고구마는 동네 애들에겐 공공의 적이 되었더랬다.

 

한데 이게 웬일? 21세기 새 천년에 접어드니 잘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애정 받는 간식이 돼 버렸네? 굽는 건 물론이고 피자, 파스타, 샐러드, 케이크 등 온갖 신식 요리에 다 들어가네? 대체 왜? ... 나로서는 신기했었다.

온갖 고구마 요리

 

몇 년 전부터 우린 펠릿 난로를 사용하고 있다. 연료비가 저렴해 샀는데,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뭣보다 겨울이 오면 스팀펑크 분위기의 난로에서 불꽃이 이글거린다. 요즘 유행한다는 소위 불멍이란 것을 가끔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그래, 불꽃에는 군고구마가 딱이지...’라고 말이다. 해서 정말 평생 처음으로 생고구마라는 것을 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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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하루카 고구마

 

그간 고구마는 피했어도 그 종류에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다. 한데 막상 사려 보니 베니하루카 고구마라는 것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일본 애니 하나다 소년사의 그 코흘리개 하나다 이치로와 그 녀석의 바가지 머리 친구들이 생각나는 왜색풍 이름, 이게 뭔가 싶었다. 해서 좀 찾아봤다.

베니하루카 고구마

 

알아보니 어릴 적 동네 꼬맹이들의 공공의 적이었던 그 고구마는 아무래도 밤고구마였던 듯하다. 이 녀석들은 덜 달고 질감이 포슬포슬해 김치랑 먹기 좋단다. 밥처럼 든든하기로는 호박고구마보다 나았을 것이고, 해서 예전에는 대개 그걸 키워 먹었다고 하더라.

밤고구마
밤고구마

 

물 많은 종류인 물고구마는 주로 소주 원료로나 쓰였다고 한다. ? 그럼 내가 그동안 고구마를 안 먹었던 게 아니었네? 그럼 대체 그동안 소주로 들이킨 게 몇 가마나 되려나... 젠장이다.

호박고구마
호박고구마

 

21세기 들어와 고구마가 재조명되면서, 잘 살게 된 사람들 입맛에는 부들부들 달콤한 호박고구마가 더 맞았다 한다. 해서 최근 먹는 것은 그 녀석들이라고. 내가 산 베니하루카는 수륙양용 또는 2단 변신 고구마쯤 되겠다. 막 캔 후에는 밤 같다가, 한 달 이상 숙성되면 호박처럼 된단다. 거기다 당도는 둘을 뛰어넘고 최상이라, ‘달기의 제왕쯤 되신단다. 아무래도 이쯤 되면 이걸 사야 할 것 같다.

 

 

감자라는 이름

 

~이었던가? 아니면 ~’였던가? 아무튼 초인종은 울렸고 고마우신 택배가 도착했다. ‘고구마다!’하며 나가봤더니, 어라? 시킨 적도 없는 감자가 왔다.

감자 상자

 

그야말로 이건 뭥미?’하며 열어봤다. 뎅그러니 고구마가 들어있더라. 한가득.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틀림없는 고구마...가 감자 상자에 잔뜩 들어있다. 그러고 보니 감자의 어원인 감저(甘藷)가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고구마의 이름이었다지? 감자가 약 60년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북방 고구마란 뜻의 ‘북감저’라고도 불렸단다. 이 녀석들, 이제 와 옛 이름 되찾긴가? 문화어 반란인가?

상자 안의 고구마들

 

생김새야 뭐, 둥글 길쭉하니 잘 빠졌다. 빛깔도 딱 그 색이다. 베니하루카는 크기도 먹기 좋을 정도이면서 겉이 매끈한 것이 특징이라더라. 특/긴특의 경우는 어른 한주먹보다 더 컸고, /상은 어른 한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베니하루카 중상 크기

 

큰 녀석들은 덩치가 크다기보다는 더 길쭉하다 해야겠다. 긴 모양 또한 베니하루카 고구마의 특징이라는데, 장점이라는 사람도 있고, 단점이라는 사람도 있더라. 나야 뭐... 아직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붉은 흙들은 어느 고구마밭에서 함께 딸려 온 질 좋은 황토라는 말인데...

베니하루카 크기 비교

 

너무 추우면 택배 도중 냉해를 입기도 한단다. 저래 보여도 난대성 작물이라고, 한겨울엔 며칠 만에 냉해를 입기도 한다는데, 일단 이 녀석들은 무사히 잘 온 것으로 보인다. 해서 집히는 대로 하나를 잡아 반을 갈라봤다. 문제없이 잘 왔고, 속살은 저런 색이었다. 베니하루카 고구마 속살은 보랏빛 도는 아이보리 색이라던데, 내 눈엔 그냥 대충 허여멀건한 색으로 보이더라. 색 이름이란 참 어렵다.

베니하루카 잘라보기

 

중간중간 보이는 저 희뜩 희뜩한 것들은 얄라핀이란다. 흰색 액체로 잘리피놀릭산과 글루코오스로 되어 있다는데, 이게 갈변 또는 흑변과 관련 있다고. 저게 보이면 숙성이 덜 된 증거라는 얘기도 있고, 저 녀석들이 대장 운동을 도와 시원시원한 쾌변을 만들어 준다는 얘기도 있더라. 변비나 묵직한 아랫배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참고할 만하겠다.

얄라핀

 

고구마를 하나씩 꺼내다 보니, 아래쪽으로 몇 개 부러진 것들이 깔려있더라. 배송 중 부러진 건지, 아니면 부러진 걸 덤으로 더 넣어주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무게를 꼼꼼하게 재 봤으면 알겠지만, 양이 넉넉해 그냥 덮었다. 귀찮기도 하고...

부러진 것들

 

보관법

 

고구마도 숨을 쉰단다. 숨을 쉰다는 것은 그 결과로 이산화탄소와 물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해서 받으면 즉시 개봉하고, 신문지 같은 것을 깔아 보관하는 것이 좋단다. 그냥 저리 포개 두면 질식해 썩게 된단다. 그 괴롭다는 질식사,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얘들에게 그 고통을 안겨줄 수야 없지.

고구마가 와글와글

 

보관 온도는 덥거나 춥지 않아야 한단다. 판매 정보를 보니 14를 추천하더라. 냉장고나 한 겨울 베란다는 절대 안 될 듯하다. 창고가 따로 없으니 거실처럼 난방을 낮게 하는 곳이 적당할 듯싶다.

신문지 위 고구마 1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베니하루카는 밤고구마 스타일로 시작해, 숙성을 거치며 호박고구마처럼 변신하는데, 후숙이 잘되면 25 브릭스를 넘을 정도로 달달해진단다. 보통 호박고구마 당도가 12 브릭스 근처, 당도 높다는 과일도 14 브릭스 근처라니, 정말 깡패 같은 당도라 아니할 수 없도다. 해서 판매자도 20정도 되는 방에서 1~2주 더 숙성해보라 권하더라. 나는 거실에 신문지 깔고 2주 정도 숙성시켜봤다.

신문지 위 고구마 2

 

자리 깔고 누운 녀석들, 큰 놈들과 작은 것들을 따로 뒀다. 별 이유는 없고, 그저 쓸데없는 생활 속의 결벽증 정도? 한데 이렇게 정리해보니, 특/긴특은 표면이 말끔한데 비해, /상은 여기저기 긁힌 자국들이 있다. 역시 특은 특인가 보다.

특과 중상 비교

 

묘하게 수줍은 자태의 한 녀석과 기념 샷. 그저 고구마일 뿐인데, 먹을 것 앞에서도 필사적으로 패턴을 찾아 연상시키는 인간의 뇌란 정말 신비로운 존재다.

수줍게 보이는 고구마

 

불꽃의 군고구마

 

펠릿 난로에 맞춰 직화구이 냄비를 꺼냈다. 난로 위에 물 없이 그냥 올려놓고 감자 등을 구울 수 있게 만들어진 냄비다. 이 녀석도 1년 내내 어딘가 처박혀 놀고 있다가 겨울 한 철 반짝 일하는 녀석이다.

직화구이 냄비

 

사용법은 먼저 난로 위에 냄비를 놓고, 그 안에 석쇠를 놓고, 그냥 고구마를 얹고 뚜껑 닫으면 끝이다. 직화구이니 당연히 물은 안 들어간다.

직화구이로 구워진 고구마 1

 

열량이나 온도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우리 난로는 대충 1시간 정도 올려놓는다. 중간에 가끔 들여다보면서. 빨리 되지 않는 대신, 아예 잊어먹지만 않는다면 태워먹을 염려도 거의 없다.

직화구이로 구워진 고구마 2

 

드디어 달달킹 베니하루카 구이를 맛볼 시간이 됐다. 잘 구워진 고구마는 수분이 날아가며 껍질이 약간 쭈글거리게 된다. 찢겨 터진 껍질 사이로 황금빛 속살이 보이고, 온 방은 특유의 향기로 가득 찼다.

고구마 잘라보기 직전

 

사진을 위해 스윽 잘라봤다. 향도 향이지만, 저 노란 속살과 바짝 구워진 갈색의 조화. 제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저 모습까지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따끈따끈하면서 촉촉한 질감과 달달한 맛, 내게 있어서는 고구마의 이미지 세탁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고구마 까기

 

난로 불 앞에서도 한 번 더 해봤다. 이 녀석은 앞의 것보다는 숙성이 덜 됐는지, 아니면 덜 익힌 건지, 갈색 끈끈한 면도 덜 나오고, 포슬포슬한 느낌이 더 났다. 하지만 질감과는 상관없이, 달긴 엄청 달더라.

 

그러고 보니 베니하루카는 품종 이름인데 반해, 밤고구마나 호박고구마는 품종 이름이 아니란다. 우리나라 고구마 품종 이름은 대개 신황미, 연황미, 풍원미, 호감미, 진율미 등 미자로 끝나는 것들이 많더라.

 

뜬금없이 발음을 로 해버리는 며느리가 고구미라 해서, 시어머니가 못 알아들었다는 고대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한데 이거 나만 알고 있는 건가? , 그럼 그 고구도 품종 이름인가? 아니면 품종명 짓는 사람들이 다들 그 얘기 듣고 큰 세대라서, 이름을 그렇게 짓는 건가? 불꽃 앞에서는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한다. 불멍이니까.

잘라본 고구마

 

이제 그만 고구마의 이미지 세탁 기록을 마무리해보자. 온갖 시름 아무리 깊다 해도, 이 겨울 따끈하게 불꽃 춤추는 난로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군고구마라도 하나씩 까먹으니, 잠깐이라도 풍족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고맙기만 하다.

난로 불꽃 앞 군고구마

 

참고한 문서들

 

풍원미, 호감미, 진율미, 고구마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김진영

베니하루카와 호박고구마의 차이점 고구마농사꾼

베니하루카 정체가 무엇일까? - 시골친척주인장

한겨울 고구마 구입할 때 꼭 참고하세요! - 팔도다이렉트

겨울철에 고구마 보관하기 82Cook

감자 - 위키백과

얄라핀 -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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