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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와 레시피/리뷰

기정떡 잔기지떡 후기

by star dust 2020. 12. 11.

술꾼조차 당길 떡

 

피곤한 아침, 뭐든 귀찮을 때 아침 대용, 아침과 점심 사이 또는 점심과 저녁 사이에 새참 당길 때, 저녁 이후 그냥 입이 궁금할 때, 가끔은 '뭔가 다른 것 좀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세상에 군것질 거리야 너무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먹기로는 아직 빵과 떡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마트든 시장에서든 장이라도 볼라치면 다들 빵이나 떡 정도는 사지 않을까?

다양한 떡

 

아, 술 좋아하는 사람은 예외일 수 있겠다. 술을 많이 마시다 보면 배도 안 고프고, 위도 약해져 떡을 피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사윗감 후보가 오면 떡을 내놔 잘 먹는지 봐서, 이놈이 술꾼인지 아닌지를 판별했었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 술 너무 좋아하면 연애도 결혼도 힘들다. 한데, 술 좋아하는 사람들도 당길만한 떡이 있긴 하다. 술 + 떡, 즉 술떡 말이다.

 

기정떡의 이명들

 

급히 찾아보니 술떡이란 멥쌀가루에 막걸리 또는 곡주를 넣어 발효시켜 만든 떡이란다. 표준적인 이름은 기정떡이고 한자로는 증편(蒸片)이라 한단다. 한데 이 녀석이 인기가 좋아, 전국 팔도에서 다 만들다 보니 그 이름도 동네마다 다양하게 변해버렸다.

접시 위 잔기지떡

 

기정떡의 이명으로 가장 쉽게는 술을 넣었다고 술떡, 경상도 북쪽에서는 기지떡, 충남 일부는 기주떡, 그리고 북한에서는 쉬움떡이라고 한단다. 뭔 이름이 이리도 많다냐... 또한 기장과 헷갈린 어떤 사람들은 기장떡이라도 하고, 요즘 인터넷에서는 잔기지떡을 흔히 볼 수 있다. 잔기지떡은 또 뭔가 뒤져봤는데, 신빙성 있는 유래가 없다. 누군가는 동그랗고 잘게 만들어 잘잘한 기지떡이 줄어 잔기지떡이 됐다고 하던데, 작고 동글동글한 것을 잘다고 표현한다? 솔직히 신통치 않아 보인다.

 

아무튼 그 이름이 잔기지떡이건 기정떡이건 술로 만드는 원리는 다 같고, 원래는 네모지게 자른 스펀지 같은 모양이었단다. 보통의 떡 모양 말이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 요즘 시대에 와서는, 먹기 좋게 동글동글 미니 케이크처럼 만들거나, 흑미를 섞어 색을 주거나, 속에 앙금을 넣은 방울 기정떡이 더 유행이란다. 아, 그러고 보니 잔기지떡이 바로 이 방울 기정떡이겠다.

 

쉴 걱정 없는 잔기지떡

 

좋아, 이번에는 술과 떡을 일석이조 할 수 있는 심심 해결사 잔기지떡으로 가자. 그리 마음먹고 찾아보니 제법 많이들 팔고 있었다. 그중 '나은떡집 기정방울떡'이라는 놈으로 골라봤다. 간식으로 먹기에 부담 없는 크기, 그리고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 보내는 방식으로 일일 500건 한정 판매란다. 오백 기 명인인가... 주문했다. 그리고 이틀 후 도착했다.

 

모든 택배가 다 그렇겠지만, 왠지 먹거리 택배 포장은 더 신경이 쓰인다. 포장은 잘 됐는지, 배송 과정에서 파손은 없었는지, 유통기한은 어떻게 되는지, 이걸 먹거나 보관할 때 주의할 것은 뭔지 등등. 사람 몸에 들어갈 것들이니 말이다. 일단 택배 상자는 아주 깨끗하게 배송되어 왔다. 포장 상태에 유난히 까칠한 그 누구도 별말이 없다. 일단은 문제없다는 무언의 긍정 신호.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떡!'이라고 되어 있고, '꼭'에도 동그라미 치고 '당일배송' 해 달라고 강조되어 있다.

당일배송 택배상자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깜놀! 새빨간 포장 상자가 들어있었다. 홍삼인 줄... 놀랐다. 아마 팥 앙금이 들어가서 선홍의 칼라를 고르셨겠지. 잡귀 다 달아나겠다.

붉은 포장 상자

 

유통기한은 5월 27일로 되어있다. 사실 저 잔기지떡은 5월 26일 날 받았었다. 아마도 25일에 만들어 보내며 3일의 유통기한을 둔 모양이다. 더 오래 보관하려면 꼭 '냉동'하란다. 당연지사다. 한데 잘 살펴보니 냉동 배송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이런 종류는 다 냉동 아닌가? 이거 괜찮은 건지 궁금해 찾아보게 됐다.

기정떡 유통기한 표시

 

결론은? 괜찮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 원래 기정떡은 막걸리나 곡주로 보통 12시간 이상 발효시키고 쪄서 만든단다. 따라서 예전에는 발효 숙성이 잘되는 여름에만 만들어 먹고, 온도가 낮은 봄, 가을, 겨울에는 잘 먹지 않는 떡이었단다. 더운 여름에도 상온에 그대로 둬도 잘 상하지 않고, 밀봉만 잘해놔도 3일 정도는 거뜬하단다. 심지어는 배송 중에 더 발효가 돼서, 여름에는 술 향이 더 진해질 수도 있단다. 술 향이라... 흐흐흐... 스읍~ 여름엔 운전하면서 먹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일반 포장으로 배송되며, 하루 이틀 늦게 도착해도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단다.

 

 

포장 뒷면이다. 깔끔하지만 큼직하게 주요 정보들이 잘 요약되어 있다. 디자인 은근히 맘에 든다. 보통 떡들과는 다르게 3일 정도는 그냥 실온에 두란다. 서늘한 곳에 두면 오히려 떡이 굳어져 맛이 없어진단다. 그러면 안 돼쥐... 기정떡은 역시나 포슬포슬 푹신푹신 아니겠는가. 그런데 제발 3일 뒤에 잊어 먹지는 말아야 할 텐데. 이 웬수같은 건망증이 문제다.

포장 상자 뒷면

 

잔기지떡 모양, 질감, 그리고 맛은?

 

붉은 상자를 열어보니 정성스레 차곡차곡 넣어진 떡들, 그 떡들을 꼼꼼히 싼 비닐, 그 포장까지 벗기니 본품 잔기지떡이 얼굴을 드러낸다.

잔기지떡 비닐포장
잔기지떡 첫인상

 

일단 첫인상은 작고 뽀얀 것이 몽글몽글, 반질반질, 귀엽고 탐스러웠다.

잔기지떡 근접촬영1

 

검은 깨알이 박혀있는데, 갑자기 추억의 오락실 게임 캐릭터들이 떠오르며, '어서 날 먹어'라고 옹알거리는 장면이 상상됐다.

잔기지떡 근접촬영2

 

크기 감도 잡을 겸, 촉감을 맛보기 위해 하나 잡아봤다. 글로 뭐라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랑~ 말랑~ 정도? 그냥 말랑말랑이 아니다. 그래서 움직이게 만들어봤다.

잔기지떡 말랑거림

 

겉은 반짝거리는 것이 살짝 기름을 두른 듯하고, 떡 하나 크기는 어른이 한입에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호랭이가 겨우 한 개 받아먹고 엄말 보내주지는 않을 듯하다.

기정떡 크기

 

홈쇼핑에서 보던 장면을 만들어보고 싶어 반을 갈라봤다. 갈라 보니 발효 떡이라 그런지, 단단하게 속이 꽉 찬 백설기와 달리 카스텔라처럼 푸슬푸슬 공기 틈이 많다. 프랙털 떡이다. 가르는 느낌도 좋다. 찐득함은 거의 없고 손에 거의 묻지도 않는다. 빵이나 케이크의 느낌이 더 강한데, 거기에 약간의 쫀득함이 남아있는 정도? 그런 느낌이었다.

기정떡 반가르기

 

카스텔라 같은 떡 속에는 검붉은 팥 앙금이 적당히 들어있다. 앙금은 팥과 적강남콩을 섞은 모양이다. 이 둘의 국적은 아쉽지만 중국, 그래도 둘러싼 떡은 국내산 품종 좋은 쌀이란다. 한입 먹어보니 어른의 향이 제법 그윽하니 좋다. 배송 중에도 잘 발효된 모양이다. 그리고 식감은 폭신폭신하다. 팥 앙금은 그리 달지 않고 팥 향도 강하진 않다. 딱 양념 정도 역할이라 하겠다. 오래 먹어도 질리지는 않을 맛이다.

잔기지떡의 팥앙금

 

시장에서 제법 맛있게 먹었던 술빵과도 비슷하다. 빵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쌀 대신 밀이 들어가는 것 말고는 제조법이 비슷해 그러려나? 태생이 촌것이신 마눌님께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술빵을 만들어 먹었던 맛진 추억이 있단다. 막걸리와 전이 아니고? 아, 막걸리와 밀가루를 먹었으니 비슷한 건가? 심지어 발효까지 시켰으니 더 좋으려나?

우유 토마토와 함께

 

우유와 방울토마토를 함께 해봤다. 잔기지떡은 따끈따근하게, 그리고 이왕이면 김이 멋지게 피어나도록 연출해 보고 싶었다. 전자레인지에 1분간 돌린 후 '김 좀 나라, 그림 좀 잡자' 주문을 외며 반을 갈라봤는데... ‘아 뜨거!’, 손만 데고 실패했다. 아무거나 다 되는 그림은 아닌 모양이다.

 

기정떡 만드는 법

 

먹으며 심심해 '음식디미방 1권 7'에 있다는 '증편법', 즉 기정떡 만드는 법을 봤다.

 

죠ᄒᆞᆫ 밋다니 ᄡᆞᆯ이나 오려ᄡᆞᆯ이나 낭경ᄌᆞᄡᆞᆯ이나 축축ᄒᆞᆫ ᄡᆞᆯ로 ᄀᆞᆯᄅᆞᆯ 보ᄃᆞ라온 체로 처 다시 뇌여 ᄒᆞ라.
증편긔쥬ᄂᆞᆫ 증편ᄒᆞᆫ말 ᄒᆞ려ᄒᆞ면 조ᄒᆞᆫ ᄡᆞᆯ ᄒᆞᆫ 되 ᄆᆞ이 시어 밥을 무ᄅᆞ게 지어 ᄎᆞ거든 죠ᄒᆞᆫ 누륵 갓가 ᄃᆞᆷ갓다가 붓거든 그 물 바타 ᄇᆞ리고 주물러 거ᄅᆞ면 흰 물이 ᄒᆞᆫ사발만 ᄒᆞ거든 그 밥애 섯거 죠ᄒᆞᆫ 술 ᄒᆞᆫ 술만 조차 녀허 괴여든 ᄡᆞᆯ 서 홉만 밥 무ᄅᆞ 지어 ᄎᆞ거든 그 술에 석거 괴면 이튼날 거픔 셧거든 쥬ᄃᆡ예 물 늣게 바타 그 ᄀᆞᆯᄅᆞᆯ 프ᄃᆡ 가장 건콩쥭 ᄀᆞ치 프러 반 동ᄒᆡ만 ᄒᆞ게 둣다가 칠홉만긔ᄒᆞ거든 안쳐 ᄶᅵᄃᆡ 상화ᄶᅵ기 ᄀᆞ치 ᄒᆞ라.

 

응? 안 읽힌다고? 뭔 얘긴가 싶은가? 나도 그렇다. 난 이걸 보고 무슨 귀신 쫓는 축문인가 싶었다. 뭔 얘긴지 궁금해 네이버 지식백과의 현대어 번역을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더라.

 

좋은 밋다니쌀이나 올벼쌀이나 낭경자쌀이나 축축한 쌀로 가루를 (내어) 부드러운 체로 치고 다시 한번 체로 쳐라.
증편을 부풀리는 술(=증편기주)은, 증편 한 말을 하려면 깨끗한 쌀 한 되를 매우 (깨끗이) 씻어 밥을 무르게 지으라. 식거든 좋은 누룩을 깎아 (물에) 담갔다가 붇거든 그 물은 밭아 버리고 주물러서 거르면 흰 물이 한 사발쯤 나온다. 그 밥에 섞어 좋은 술 한 숟가락과 함께 넣어 발효하거든 쌀 세 홉만 밥을 무르게 지어 식은 후 그 술에 섞어라. 발효하여 이튿날 거품이 일거든 명주자루에 (넣어) 물을 천천히(?) 밭아 그 가루를 풀되 아주 건 콩죽같이 풀어 반 동이만큼 되도록 두었다가 칠 홉쯤 되거든 안쳐 상화 찌기같이 하라.

 

좀 낫긴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런데 설마 내가 여기 옮겨 놨다고 융통성 없이 다들 읽어보지는 않았겠지? 먹다 체하는 수가 있다.

 

기정떡 요괴, 떡개비 출현

 

다 먹고는,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 구운 떡에도 도전해봤다. 홍삼 상자에서도 중불로 노릇하게 구우면 별미라 하지 않았던가? 연장 준비해 바로 실험해봤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으니 말이다. 결과는... 호떡! 그것도 한입거리 미니 호떡이다. 딱이다.

기정떡 호떡

 

별거 아닌 팁이지만, 구운 기정떡을 만들 때는 과감하게 눌러줘야 한다. 터지거나 눌어붙을까 걱정해 살살 돌리기만 하는 심약자들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앞에서도 본 것처럼 이 떡은 잘 터지거나 묻어나질 않는다. 그러니 시장의 호떡집 아줌마가 꾹꾹 눌러 굽듯이 넓은 주걱으로 팍팍 눌러가며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팬에 구워봤더니 그냥 데워먹는 것과는 식감도 달라졌다. 더 쫄깃해진 느낌이다. 기름을 살짝 둘렀더니 좀 더 화~한 음료가 생각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민트 차를 협연시켜 봤다.

구운 잔기지떡과 민트차

 

잔기지떡의 노릇한 색감에 차의 옅은 녹색, 약간의 기름기에는 민트향, 그리고 떡의 뜨끈함에는 차의 서늘함이 잘 어울리더라.

민트차와 기정떡

 

먹다 보니 하나 남았다. 고민된다.

하나 남은 잔기지떡

 

먹으며 앙금 때문에 팥에 대해 좀 찾아봤다. 이미 7천 년 전부터 길러왔단다. 무려 단군보다도 선배였다. 재밌는 것은 우리 동북아시아, 즉 한중일에서만 좋아라 먹고 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좋아하질 않는단다. 우리는 팥이라는 별도의 이름도 있고, 심지어 국민동생 콩쥐의 언니인데, 서양에서는 따로 이름도 없이 그냥 빨간 콩(red bean)이란다. 그래서인지 서양인들 중에 양갱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더라. 하지만 한중일에서는 길조로 여기며 즐겨 먹어왔단다. 빙수로도 먹고, 빵으로도 먹고, 그중 영혼의 음식 붕어빵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잡귀 쫓자고 온 국민이 날 잡아 동지팥죽도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잔기지떡으로 요괴 얼굴 한 번 만들어 봤다. 일명 떡개비, 보이는가?

기정떡 요괴 떡개비

 

내가 리뷰한 잔기지떡은 백미에 앙금들은 버전만 있었다. 한데 나중에 보니, 비슷한데 흑미로 색을 더한 버전, 또는 백미 또는 흑미에 앙금이 안 들은 기정떡 등, 선택 옵션이 더 양한 것들도 있더라. 몇 분에게 권하기도 하고 선물도 해봤는데, 떡이라는 참함, 발효식품의 고급스러움, 거기다 아기자기한 모양과 질감에 만족도가 꽤나 높더라. 한번 찾아보시라 권하고 싶다.

 

참고한 문서들

 

술떡 - 나무위키

- 나무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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